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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여린 전사는 어떻게 싸우란 말인가?감정의쓰레기통 2023. 6. 5. 21:57
깨먹었다. 떨어뜨린건 아니고 그냥 살포시 놓았는데, 깨질 운명이었나보다. 올 것이 왔다.
중증 우울증과 공황장애 그리고 알콜 의존증.
사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란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의사선생님과 면전을 맞댄 상태에서 진단을 받으니 살짝 짜증은 난다.
(솔직히 현대 사회인이라면 하나쯤은 있지 않나? 나는 3관왕 달성이라 문제지만)
그러니까 올 것이 왔다기보다는 그냥 확인사살만 당한 셈이다. 이렇게 쓰고보니 더 비참한 것 같기도 하고..
내자신에게 너무 무신경했던걸까?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도 아 내가 삐끗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겠다라는 것을 느낄 때가 어지간하면 다들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혼자서 술 먹고 한밤 중에 외로이 울던 것도, 집에 들어가는 저녁놀에 가끔은 웃던 때에도, 아니면 눈물 흘리던 때에도,
그것도 아니면 종종 한숨이 흘러나오던 때들이 내 경우였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보금자리를 노원구 소재의 10몇층짜리가 복도식 주공아파트가 아닌 종로구 이화동 골목구석으로 선택한 것도 사실은 여차하면 술에 취해 난간으로 자유(를 찾아떠나기 위한)낙하를 시도할까봐서 무서웠던 이유도 컸다.
사람을 빠르게 판단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파라미터가 별자리와 혈액형에서 MBTI로 바뀐 이 세상에서
속일 수는 없는 듯이 “너 T야?”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그리고 그게 맞다)
나는 엔지니어라 그런지 그것이 또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이 또한 인지부조화 증상인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치여살던 요즘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래서 뭐하겠는가?’
물론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기에 독심술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건 아니지만,
조금은 알 것 같기에 더 힘들다. 차라리 아예 몰랐던 때로 돌아간다면 낫겠다 싶기까지 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요즘은 남들보다 내 머릿속이 더 궁금할 때가 많더이다.
정말이지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아, 참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다. 내 편 하나 쯤은 있으면 좋겠는데..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공부해야지. 돈도 더 벌어야지. 또 뭐 해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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